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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합기도의 근간을
마련한 최용술선생
합기도의 시원은 삼국시대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과 각종기록에는 신라의 삼랑원의광(三郞源義光)이 시조라고 나타나 있는데 이 합기도가 일본을 건너가 막부의 「미나모토」가에 전한 후 8대를 지나 다케다 소오가쿠에 전해졌다. 다케다 소오가쿠는 수제자인 우에시바모리하사에게 비술을 전수시켰다. 우에시바는 일본 합기회 합기도를 창시해 일본에서 합기도를 크게 성행케 하였다.

최용술씨가 한국에 건너와 도주가 되면서 전통합기도의 새로운 맥을 잇게 하였다. 한국 합기도의 발상은 51년 2월, 최용술 도주와 서복섭씨가 대구 달성공원네거리 대구양조장 2층에서 대한합기도 유권술도장의 문을 연 것이 시발이었다.
 
그 시발지인 도장에서는 해방 후 일본에서 합기도를 전수받고 귀국한 최용술씨(당시 46세)가 서복섭씨를 사범으로 하여 20여명의 수련생들께 무예수련을 하게 하였다. 당시 최도주가 국내에서 합기도를 창시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48년 2월 해방직후 식량난이 심각하자 많은 사람들이 서복섭씨의 양조장에서 나오는 주박(술찌끼)을 구입하여 양식으로 먹을 당시였다. 이때 대구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찌끼」를 구입하러 갔던 최용술씨가 길게 늘어선 줄에서 옆사람과 시비가 붙게 되자 날렵한 동작과 품세로 제압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서복섭사장, 서씨는 즉시 최도주에게 대련을 가져보자고 요청 한 후 최도주에게 합기도의 무술을 수련받았다.

그 후 51년 2월엔 최도주와 서복섭씨가 중심이 돼 처음으로 합기도장을 개설하여 현판식을 가졌다.(현판식참석자:최용술, 서복섭, 장승호, 서병돈, 최병열) 이 도장에서 수련한 실력자들이 서울 및 기타지역으로 나아가 오늘의 합기도를 전파하게 되었다. 56년 3월 강문진씨(현재 식품회사경영)가 대구 북성로에 「경북유술관」을 개설, 합기도보급의 선구자가 됐으며 57년엔 지한재씨(현 샌프란시스코에서 합기도장 운영)가 서울에 성무관을 열어 타 지역에까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60년엔 김무홍씨(현재 건자재상)가 서울에서 신무관을 개관하였다. 이후 지한재씨와 김무홍씨에게 기술을 전수한 사범들이 국내는 물론 미국.영국,독일 등 외국에 나가 도장을 열고 합기도를 전파하게 되면서 국제적인 무술로서의 성가를 높이게 되었다.

대구에 산파역을 한 정무권씨(대한유권술 합기도협회 본부장)가 현재까지 계속 합기도 본산의 뿌리를 지켜오고 있다. 현재 합기도는 우리나라에 1000여개의 도장이 있으며 외국에도 소련 등 일부 동구권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 각국에 많이 보급돼있으며 외국에서 합기도를 전수받은 외국인들이 최근 대구를 자주 방문하여 합기도의 뿌리를 확인하고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합기도는 현재 기본기 270여종에 3천876술의 응용기가 전수되고 있다. 태권도가 대중스포츠로 뿌리를 내린 것과는 달리 합기도는 아직도 정통무예를 고수하고 있다. 합기도는 타 무도와는 달리 체술(體術)에 앞서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합기도에서는 통상 정신수련법을 합기도법, 육체단련법을 합기술로 구분한다. 합기법은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 등의 수련을 통해 통성(通性) 지명(知命) 보정(保精)을 완성, 참된 인격도야에 이르는 수련과정이다.
합기도에는 체술, 기구술, 활술 등을 연마하는데 체술에는 손, 발, 몸기술이 있고 기구술에는 봉,검,창을 이용한 술기가 있으며 활술에는 인체 14경락과 365개 혈을 원활히 단련한다.

합기술은 선제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하는 무예로 절대생존의 싸움에 대비한 수련고행의 의미가 크다. 국민생활체육전국합기도가 우리나라 고유의 정통무예인 합기도가 제자리 찾음에 거는 합기도인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대단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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